[15.02.26 오마이뉴스] 잃어버린 의경 군화까지 배상... 그들은 '동네북'이었다

 

노동과 시민이 하나 된 '손배가압류 잡자' 캠페인 1년

 

처음엔 소박했습니다. 힘든 노동자들을 위해 "떡국이라도 끓여보자"고 모인 스무명 남짓의 시민들. 그러나 그것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 500명 시민의 제안으로 '손배가압류 잡자!(아래 손잡고, 대표 : 조은, 고광헌, 이수호, 조국)'라는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1년 전 2월 26일의 일입니다. 손잡고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가압류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모임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배춘환 주부가 한 주간지 독자투고란에 "쌍용차 손배가압류 47억, 10만 분의 1로 나눠보자"며 아이 태권도비 4만7000원을 보내왔는데요.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참여 인원 4만7547명, 총 모금액 14억6874만1745원의 일명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번진 것입니다. 이렇게 2014년 봄, '노동'과 '시민'이 하나 되기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봄입니다. 우리 주변의 노동 상황이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춥게 느껴지는 봄입니다. 서있기도 비좁아 보이는 전광판(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협력업체에서 인터넷 설치기사들이 중앙우체국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중)과 나오는 연기마저 얼려버릴 듯한 쌍용차 굴뚝, 그곳에 아직 '사람'이 있기에 손잡고 1주년을 조용히 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4만7547명의 노란봉투캠페인 참가시민과 시민모임 '손잡고' 제안자를 대신해 얻은 경험을 돌아보니 분명 작지만 따뜻한 변화가 있더라고요. 절망스런 현실에 한 자락 '온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합니다. 들어보시겠어요?


노란봉투, 모금도 나눔도 시민의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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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2월 10일 노란봉투캠페인 모금 시작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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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시작한 '2014노란봉투캠페인' 모금으로 112일 동안 14만6874만1745원이 모였습니다. 이 캠페인을 공동으로 진행한 아름다운재단, 시사인, 손잡고 모두 상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노동을 이슈로 한 시민모금 가운데 사상 최대 모금액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개인적 감상을 더하자면, 활동가 월급으로는 복권당첨이 아닌 이상 꿈도 못 꿀 숫자 앞에서 그저 얼떨떨했습니다. 그러나 곧 고민이 몰려오더군요. 모으는 것만큼 잘 쓰는 것이 중요한데 이걸 어떻게 나눠야 할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걱정도 잠시, 활동영역도 직업도 다양한 시민들이 이번에도 기꺼이 '손'을 보태주었습니다. 손잡고의 활동 중 무려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할 만큼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손배가압류피해자생계의료비지원활동은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까다롭고 신중한 작업에 법학교수, 사회복지학 교수, 노동 변호사, 언론인이 동참했고, 그렇게 손배가압류 피해가구 329가구에 기금 11억7천여만 원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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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잡고 노란봉투법 입법청원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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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는 국회의원, 정치인, 법학자, 노무사 등 노동법 전문가들이 손잡고 노동3권 방해하는 '법제도' 뜯어고치기에 나서 주었습니다. 그렇게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탄생했지요. 이 '노란봉투법'은 다시 입법청원운동을 통해 시민의 '손'으로 발의될 예정입니다.

연극인들도 동참했습니다. "그들은 돈이면 뭉치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뭉칠 수 있을까요?" 씨앤앰 조합원 강성덕씨가 고공농성 직전 한숨 같이 토로한 물음은 창작극 '노란봉투'가 되어 시민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50석 소규모 극장에서 3주간 1000명의 관객이 되어 응답했습니다. 이렇게 손잡고의 1년은 시민의 '관심'과 '연대'로 숨 가쁘게 굴러갔습니다.

 


손배가압류 피해사례 직접 만나보니...  일상을 잃은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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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잡고 노동현장간담회 현장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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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손 내밀기만큼 어려운 게 있더라고요. 바로 함께 손을 맞잡는 일입니다. 두 차례의 손배피해자생계의료비지원사업, 세 차례의 노동현장간담회를 통해 손배가압류 피해자들을 만났는데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온 전화는 안 받아요." 
"빚 갚으라는 연락이 많이 와서 모르는 번호는 수신거부합니다." 

민주노총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만난 손배가압류 피해자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들은 대부분 긴 해고기간 동안 지게 된 수천만 원의 빚과 수십 억, 수백 억의 손배가압류가 주는 정신적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연락하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노조가 와해되고 뿔뿔이 흩어진 노동자들을 찾는 일도 수월치 않았습니다. 손배로 인한 고통이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조합원 배달호씨의 유서 중. 

"생계를 넘어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리려는 손해배상 30억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 2014년 5월, 노란봉투생계의료비지원사업 신청서 중.

기억하시나요?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는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다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런데, 10여년 후 손배가압류 피해자가 보내온 '생계의료비지원신청서'에서 우리는 배달호씨의 그림자를 느꼈습니다. 

지난 10월엔 해고자에게 양보하겠다며 '생계의료비지원신청'을 포기한 한 노동자가 손배청구 70억 원을 한탄하며 죽으려고 한 일도 있었지요.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10년 동안 국민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권에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고, 수천억의 손배가압류, 즉 돈으로 노동자를 옥죄는 게 당연한 절차인양 받아들여졌습니다.

아, 달라진 것이 있네요. 먼저 손배청구 금액.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손배소송 청구액은 115억3500만 원에서 2014년 1691억여 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손배가압류가 노동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방식도 더욱 악랄해졌더군요. 노조를 탈퇴하는 사람에게 손배가압류를 철회해주는 일도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회사도 모자라 국민을 보호하고 갈등을 중재해야 할 국가가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거는 일도 있었죠. 노조로부터 받은 생계비 지원신청 추천서를 보니, 전의경의 '잃어버린 군화 한 짝', '우의 한 벌'까지도 노동자에게 청구하고 있더라고요. 화재보험사마저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지경이니 말 다했습니다.

그들에게 일상이 된 건 손배가압류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노동' 문제를 마치 남의 일인양 듣고 침묵하는 대중의 무관심도 그들에게 '일상'이 되지 않았을까요. 손잡는 일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또 다시 걱정이 앞섰습니다. 

"함께 연대하는 것은 자기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시민의 관심과 연대는 그 자체로 변화의 '동력'이 됐습니다. 일단 내민 '손'을 잡고 나니, 꽁꽁 얼어붙어 녹지 않을 것 같던 노동자의 손에도 조금씩 온기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후일 또 다른 지원 필요한 분 계시면 꼭 연락해 주세요. 저 또한 보답할 기회를 주십시오."
"꼭 필요한 곳에 잘 쓰겠습니다. 한 가정의 단비가 되었습니다." 
"손배가압류가 해결되면 이 좋은 일에 적극 돔참하여 어려움을 함께 하겠습니다." 
"해고자라서 행복하다는 착각을 잠깐 했네요. 고맙습니다."
"처음으로 세상이 따뜻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의 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어 그 '온기'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차광호씨가 무려 276일째 고공농성 중인 스타케미칼이 그런 사례인데요. 스타케미칼의 손배청구소송을 손잡고에 처음 전한 것은 바로 같은 구미지역 또 다른 손배사업장 KEC 조합원들입니다. 

쌍용차 해고자들도 흩어져 있는 다른 해고자들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도움도 주었습니다. 다 같이 어려운 처지에서 더 어려운 해고자들, 더 작은 사업장의 소식을 알리며, 생계의료비지원을 양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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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14일 연극 노란봉투 마지막 공연 날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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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 문제를 알리는 캠페인에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공농성 중인 씨앤엠 강성덕 조합원과 쌍용차 김정욱 사무국장을 비롯해 투쟁사업장에서 16명의 노동자가 연극 <노란봉투> 카메오로 출연해 극 중 고공농성에 돌입하는 '병로'를 응원하며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현실 속 연극팀은 씨앤앰 농성장을 찾아 강성덕씨를 응원하고, 평택 굴뚝을 찾아 김정욱 사무국장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냈고요. 김정욱 사무국장은 다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함께 연대하는 것은 자기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


노동과 시민 '손잡고' 1년, 그리고 

손을 내밀고, 잡으며, 이렇게 1년을 보냈습니다. 물론, 부산 막걸리 '생탁'과 '속초의료원' 사례처럼 노동자에게 손배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믿어보겠습니다. 늘 그렇듯 노동자의 봄은 시민의 따뜻한 '손'에 의해 다가왔고, 지난 1년 동안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다시 1년, 손잡고의 2015년 봄은 '노란봉투법'으로 시작합니다. 손잡고의 노조법 개정은 시민이 만든 '노란봉투캠페인'이라는 희망을 거름삼아 첫 발을 디뎠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인데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이미 가진 권리도 주장하고 지키지 않으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만드는 건 누구일까요? 노동자들이 높은 곳, 혹은 낮은 곳에서 왜 몸부림쳐야만 할까요? 우리가 만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쟁의행위'라는 결과 이전에 그 이유를 궁금해해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꽁꽁 언 굴뚝과 전광판 위 사람을 녹여주는 것은 '관심'과 '연대'입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 가족이며, 친구, 동료, 이웃이며, 또는 '나'이기도 한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지켜주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4747&PAGE_CD=ET000&BLCK_NO=1&CMPT_CD=T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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