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2.23 시사인440호] 노동조합 구호에 억대 소송으로 답하다

[시사인 440호] 노동조합 구호에 억대 소송으로 답하다

손해배상 소송이 진화하고 있다. 구호나 현수막 등 적법하고 기본적인 노조 활동까지 문제 삼아 고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판결 여부보다 노동자들에게는 소송 그 자체가 부담이다.

 

신한슬 기자  |  hs51@sisain.co.kr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폭탄’이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조합의 ‘구호’를 문제 삼아 회사 측이 노동자에게 고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까지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손배소 남발이 노조의 적법한 쟁의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둔 2월4일 부산지방법원은 ‘생탁 막걸리’ 제조사인 부산합동양조 사장 25명이 파업 노동자 8명을 상대로 제기한 10억원(각각 1억2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회사 측은 노조가 파업 중에 사용한 현수막과 손팻말에 적힌 ‘근로자의 피를 빨아먹는 25명의 사장들은 각성하라’는 문구가 사장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위자료를 요구했다. 또한 노조가 비위생적인 근로 환경을 폭로하면서 생탁 불매운동이 전개됐는데, 이에 따른 손해도 파업 노동자에게 물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측이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를 입증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1월, 부산 사하구의 생탁 막걸리 장림제조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 측의 근로기준법 위반, 임금체불, 식대 450원과 곰팡이 핀 샤워실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문제였다. 파업은 650일이 넘도록 장기화되고 있다.

송복남(55) 민주노총 부산일반노조 생탁 현장위원회 총무부장은 지난해 4월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송 부장은 지난해 12월24일, 어렵게 개시된 노사정 교섭을 계기로 광고탑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253일 만에 밟은 지상에서 그를 맞은 것은 30㎝ 두께로 쌓인 고소장과 출석요구서들이었다. 노조의 기자회견 발언과 전단지 배포 내용이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송복남 부장은 “이런 소송은 노동3권에 명시된 쟁의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고죄로 역고소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송복남씨 페이스북 제공</font></div>1월26일 부산 사하구 생탁 막걸리 장림제조장 앞에서 노조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송복남씨 페이스북 제공

1월26일 부산 사하구 생탁 막걸리 장림제조장 앞에서 노조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소송 근거는 손팻말과 노조 소식지의 ‘문구’

비슷한 사례가 다른 사업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 금천구 고려수요양병원의 재활치료사들과 노동자들은 지난해 4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체불임금 반환과 대체공휴일 수당을 요구했다. 그러자 병원 측은 노조 간부 3명에게 9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형사 고발했다. 손해배상과 형사 고발의 근거는 손팻말과 현수막, 노조 소식지 등의 문구였다. 김지윤(29)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사무장은 “파업을 한 것도 아닌데, 기본적인 노조 활동으로 손해배상을 걸면 일하는 사람들은 목소리도 내지 말라는 말인가. 변호사가 이런 고소장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형사 고발은 증거가 없어 불기소 처리됐다.

그러나 파업 중인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소송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이다. 생탁 막걸리의 송복남 부장은 “조합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소송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한평생 경찰 조사를 받아봤겠나”라고 한탄했다. 시민단체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지금까지의 판례에서 손해배상의 근거는 주로 불법 점거나 재물 손괴 등이었다. 이제는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도 손해배상을 건다. 손해배상의 사유가 점점 가벼워진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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