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26 한겨레] [시론] 함께 살자고요, 손잡고!

 

손잡고가 첫돌을 맞았습니다. 1년이 참 빨리 흘러갔습니다. 배춘환 주부의 아름다운 마음이 가수 이효리님에게 불씨가 되었고, 이효리님의 정성스런 편지가 또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려 14억7000여만원이라는 거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해고와 손배가압류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노동자 가정에 시민여러분의 정성으로 모은 생활지원금을 전달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손배가압류의 현실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는 토론회로 공청회로 간담회로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비정규직보다 훨씬 못한, 해고자보다도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연극인들과 같이 미쳐서 연극 <노란봉투>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해주셔서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보낸 1년이지만 노동과 시민이 하나됨이라는 큰 꿈은 고사하고, 툭하면 손배가압류가 떨어지는 현실을 얼마나 바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강연 자리에서 ‘노란봉투법’ 입법청원 서명용지를 돌리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입법청원, 그거 하면 세상이 바뀌나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말했지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요, 입법청원 따위로 바뀌게요”라고요. 지난 1년 사이에 뭐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손잡고가 출발할 때 철탑에 올라 있던 현대자동차 최병승과 천의봉이 내려와 손잡고 모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신 하늘은 스타케미칼의 굴뚝에서 차광호가, 쌍용차 굴뚝에서 김정욱과 이창근이 새로 올라가 지키고 있습니다. 씨앤앰 강성덕과 임정균은 그새 광화문 전광판에 올라갔다 내려왔고요, 엘지(LG)유플러스 강세웅과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 장연의는 새로 중앙우체국 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이 겨울에 머리마저 시원하게 밀어버렸습니다. 1년 전 손잡고를 시작할 때는 늘 철탑을 얘기했는데, 이제는 고공농성의 상징이 굴뚝과 전광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사이 생탁(막걸리)과 속초의료원이 손배 사업장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분신으로 음독으로 또는 목을 매어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거나 떠날 뻔했던 분들의 이야기는 차마 쓰지 못하겠습니다. 시민사회에서 만져보기 힘든 10억대의 거금을 300여가구에 생활지원금으로 보내드렸지만, 이미 수천만원 빚더미에 올라앉은 해고자 가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언 발에 오줌 누기’란 속담은 딱 이런 데 쓰라고 생긴 것 같습니다.

 

개화의 선구자 유길준이 <노동야학독본>을 간행한 지 100년이 넘었건만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어디에서도 노동문제를 가르치지 않아서, 젊은이들은 ‘혜리 광고’로 겨우 노동법을 배운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에 ‘정규직’이 떡하니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요. 드라마 <미생> 열풍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두고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며 중규직을 대안으로 내놓는 나라에서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아, 귀천은 없어진 지 오래지요. 갑과 을이 있을 뿐입니다. 호흡을 길게 갖자는 것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헌법에 실려 있는 노동3권, 특히 단체행동권이 손배가압류에 철저하게 짓밟히는 나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는 힘은 시민들만이 갖고 있습니다. 노동과 시민의 연대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실 노동과 시민 사이에 연대란 말도 우습습니다. 둘은 원래 하나였으니까요. 저 높은 곳에 있는 차광호와 김정욱과 이창근이 우리가 잡은 손을 밟고 이 땅으로 내려와 가족과 동료와 우리 시민들과 함께 살게 해주십시오. 굳게 손잡아 주십시오. 함께 살자고요, 손잡고!

 

한홍구 손잡고 운영위원·성공회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9700.html

 

무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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