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08 경향] 로 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2009-2014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서울고법 판결을 뒤집고 사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2009년 회사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2646명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공장점거투쟁을 시작한 지 꼭 2002일 만에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은 ‘법적으로’ 패배한 거죠. 해고 노동자 이창근씨와 동료 김정욱씨는 굴하지 않고 쌍용차 평택공장 70m 높이의 굴뚝에, 바로 이 땅에 살겠다는 일념으로 올랐습니다. 7일로 꿀뚝 투쟁은 57일을 맞았습니다. 

<이창근의 해고일기>(오월의봄)는 쌍차노동자들이 해고된 2009년부터 꿀뚝에 오른 2014년까지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6년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지독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동료와 그 가족 26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창근씨는 노조 대변인으로서 고통과 절망, 죽음의 문제에다 해고의 부당함을 수도 없이 반복해 말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씨는 죽음이 쌍용차 투쟁과 사태의 본질이 돼버린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당면한 문제에 맞서는 게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이 마음껏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사회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은 언제든 쌍용차와 같은 문제에 맞닥뜨릴 수 있다”며 연대를 호소합니다. 

이씨와 김정욱씨는 여전히 굴뚝에 있습니다. “노동자로 당당히 살아가고픈 꿈, 노동 과정과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구조와 틀을 바꾸는 꿈”을 접을 수 없기에 버티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무려 309일 동안 해고자 복직을 요구했던 김진숙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왔을 때 이창근씨는 ‘희망버스 손수건’을 걸어줬다고 합니다. 김진숙씨는 추천사에서 “그가 내려오는 날, 이번엔 내가 손수건을 걸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책 마지막의 ‘쌍용자동차 노조 투쟁 일지’에 나온 6년간의 죽음, 투쟁, 연대의 기록을 사진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이 건조한 육하원칙의 기록이 해고노동자들의 땀, 눈물, 슬픔, 고통의 편린이라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빌어봅니다. 더 깊은 이야기는 <이창근의 해고일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책 인세 전액과 오월의봄 수익금 일부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짓는 ‘분홍 도서관’ 건립에 쓰인다고 합니다. 

2009년

1월9일 상하이차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4월8일 사측이 2646명 감원, 신차 C-200과 관련해 300~400여 명 순환휴직 실시, 운휴자산 매각 등으로 단기 유동성 확보 계획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오모씨가 자살했다.

5월8일 사측이 노동부에 2405명 정리해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5월13일 김을래 부지부장, 김봉민 정비지회 부지회장, 서맹섭 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이 평택공장 70미터 굴뚝농성에 돌입했다.

5월22일 공장 점거 총파업에 돌입했다.

5월27일 조합원 엄모씨가 신경성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6월11일 조합원 김모씨가 구조조정 압박과 관제데모 강요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허혈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6월21일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장모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6월27일 용역, 구사대, 경찰의 공장 진입 시도로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7월2일 희망퇴직자 김모씨가 자신의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7월20일 점거 농성 중인 공장에 34개 중대와 장비를 동원한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지부 정책부장 아내 박모씨가 파업 장기화로 인한 우울증을 앓다 자살했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경찰들. 결국 무자비한 공권력의 진압으로 교섭다운 교섭 한 번 하지 못한 채 파업은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책 36쪽)

 



8월6일 사측과 노조가 무급휴직 48%, 희망퇴직 52%에 합의하고, 조합원들이 공장에서 나왔다. 경찰은 96명을 연행하고, 200억 원이 넘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8월22일 조합원 천모씨가 경찰의 강압 조사로 인해 자살을 시도했다.)

9월14일 쌍용차가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9월15일 조합원 이모씨가 경찰의 강압 수사로 인해 자살을 시도했다.)

2010년

2월20일 재직자 김모씨가 자신의 차에서 연탄가스를 피워 자살했다.

4월25일 조합원 고 임모씨의 아내 최모씨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5월4일 조합원 최모씨가 분사한 시설 팀에서 무리하게 노동하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7월9일 이모씨가 파업 후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7월10일 희망퇴직자 계모씨가 집에서 파업 상태를 지속하는 착각에 빠지는 등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

11월19일 희망퇴직자 김모씨가 ‘쌍차 출신’이라는 이유로 실업 상태가 장기화되던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12월14일 중증장애인이자 희망퇴직자인 황모씨가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파업이 끝난 1년 후인 2010년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건강했고 활기를 잃지 않았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책 51쪽)



2011년

1월13일 희망퇴직자 서모씨가 평택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거제도에서 용접 일로 생계를 꾸리던 중 차 안에서 연탄가스를 피워 자살했다.

2월26일 무급휴직자 임모씨가 아내의 자살 뒤 두 자녀와 함께 가정을 꾸려오다가 수면 중 돌연사했다. 쌍용차 무급자 임무창씨가 숨졌다. 불과 10개월 전인 2010년 4월엔 그의 아내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남겨진 아이는 둘, 통장 잔고는 4만 원이었다.

2011년 4월 임무창 조합원 49재 추모제. 쌍용차 투쟁에 새로운 전기는 무급자 임무창 조합원의 사망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책 57쪽)



2월28일 희망퇴직자 조모씨가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3월14일 법원이 쌍용차 회생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5월10일 희망퇴직자 강모씨가 다른 공장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10월4일 재직자 고모씨가 차에 연탄불에 피워 자살했다.

10월10일 희망퇴직자 김모씨가 대인기피증 등을 앓다가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11월8일 재직자 윤모씨가 인근 야산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11월10일 희망퇴직자 차모씨의 아내 오모씨가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 기도가 막혀 사망했다.

12월7일 쌍용차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해고자 복직 투쟁 승리를 위해 평택공장 앞에서 희망텐트 농성에 돌입했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 추위에도 희망텐트를 이어가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한겨울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잠자리는 늘 풍찬노숙이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책 137쪽)



2012년

1월20일 희망퇴직자 강모씨가 두 번의 해고로 인해 우울증을 앓다가 집에서 자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월13일 희망퇴직자 민모씨가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했다.

3월30일 조합원 이모씨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4월5일 쌍용차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했다.

대한문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문화제가 열렸고, 매일 미사도 있었다. 그리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1만 배까지. 어느새 대한문은 한국 사회 연대의 상징이 됐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책 61쪽)



7월1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크레인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쌍용차 평택 공장에서 부산까지 ‘소금꽃 찾아 천릿길’ 행진을 했다.

10월8일 희망퇴직자 한모씨가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했다.

11월20일 문기수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한상균 전 지부장이 평택공장 앞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2013년

1월9일 조합원 류모씨가 경기 평택공장에서 자살을 시도해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사망했다.

1월10일 쌍용차 노사가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2월15일 서울남부지법이 무급휴직자 461명 가운데 245명이 낸 임금 지급 청구소송에서 “쌍용차는 밀린 임금 중 127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4월4일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농성장을 10분 만에 기습철거하고 그 자리에 묘목을 심었다.

5월9일 한상균 전 지부장과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이 건강 악화로 송전탑에서 내려왔다.

6월2일 2009년 회계 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새로 제시됐다.

9월10일 쌍용차 범대위와 쌍용차지부가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단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우리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9월10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우리는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국정조사 실시의 요구를 건 집단 단식으로 쌍용차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을 이번엔 반드시 만들고자 한다. | 이창근씨 제공 (책 341쪽)



9월30일 21일간의 집단 단식농성을 끝냈다.

11월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이 쌍용차지부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소송에서 노조가 회사에 33억1140만 원, 경찰에 13억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손배가압류 철회 촉구 기자회견.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억울할 판에 되레 대한민국 경찰과 회사는 47억 원을 노동자들이 물어내라고 한다. | 이창근씨 제공 (책 355쪽)



2014년

1월24일 회사와 정부의 ‘손해배상 소송 폭탄’이 노동자의 생존권과 단결권을 위협함에 따라 그 대책 마련과 정책 개선을 위한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모임이 출범했다.

2월7일 서울고등법원이 정리해고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던 원심을 깨고 해고 무효 판결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쌍용차 공장 앞에서 법원의 복직 판결을 수용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4년 2월 법원은 “해고는 모두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 | 이창근씨 제공 (책 370쪽)



4월23일 창원공장 해고노동자 정모씨가 경남 창원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6월26일 김득중 노조위원장(지부장)이 7.30 평택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3382표를 얻어 득표율 5.63%를 기록했다.

11월13일 대법원이 지난 2월 해고무효확인 소송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원심파기환송 판결했다.

지난해 11월13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무효확인소송에 대해 ‘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판결 후 대법원 청사를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1월15일 ‘쌍용차 투쟁 2000일, 함께!’ 집회를 열고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12월13일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쌍용차 평택공장 안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해고 노동자 박모씨가 간암으로 사망했다.

굴뚝에 함께 오른 김정욱 사무국장(오른쪽)과 함께. | 이창근씨 제공 (책 421쪽)

 

12월22일 대법원이 2009년 대량해고 당시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 9명 해임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081247021&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