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30 주간경향 1107호] [비상식의 사회]노동자 말려 죽이는 비열한 손배가압류

 

현대자동차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이라는 폭탄을 퍼부어 노동조합을 초토화하고 노동자들을 무릎 꿇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 모두 미안합니다. 저 너무 힘들어 죽을랍니다. 제가 죽으면 꼭 정규직 들어가서 편히 사세요. 현대에게 꼭 이기세요. 더럽고 치사한 나라 살기 싫어 이 생각 합니다.”

지난달 11월 6일 새벽, 현대자동차 울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성 아무개씨(38)가 수면제 30알을 삼키며 남긴 유서의 일부이다. 다행히 동료들에게 일찍 발견되어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위세척을 거부하는 등 죽음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소속 회원들이 10월 30일 현대차 신차 발표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불법파견 시정 및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가난한 자에게 실형보다 무서운 벌금


그도 지난 9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이 인정되어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물론, 그동안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상의 길도 열렸다. 그런데 왜 죽음의 길을 선택했을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가 회사의 불법에 맞서 벌인 정규직화 싸움은 피어린 투쟁의 역사였다. 2004년 노동부가 특별감사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모든 생산 사내하청업체(127개)의 모든 공정(9234공정)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이래, 대법원이 그 사실을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을 2010년에 했고, 2014년 서울중앙지법에서 개인의 근로자 지위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무려 10년 만에 내렸다. 사측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해고자만도 220명에 달했고, 울산공장에서만 비정규직노동자가 20번이나 구속됐고, 2명이 분신했고 류기혁, 박정식 두 열사를 노동자들의 가슴에 분노의 눈물로 묻어야 했다.

현대자동차 자본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법적 대응은 집요하고도 악랄했다. 대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면서 노동자들의 힘들고 아픈 곳을 면도칼로 생살 후비듯 파고들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가압류 신청이었다. 사실 가난한 노동자들은 때로는 징역형의 실형보다 고액의 벌금형을 더 두려워한다. 실형이야 몇 년 몸으로 때우면 되지만 벌금형은 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벌금형을 받고도 그 벌금에 해당하는 날수만큼 스스로 옥에 갇히기를 선택할까? 그만큼 가난한 노동자에게 돈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비열하게도 그걸 악용했다.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요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안타깝게도 법원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헌법 제32조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오히려 법원이 자본과 결탁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인지대만 1억원 넘어 소송 포기 지경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대법원 판결을 지키라는 요구를 걸고 벌인 25일간의 파업에 대해, 현대자동차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모두 7건인데 5건은 항소심 진행 중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난 9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판결 이후, 2010년 파업 관련 손해배상소송이 속도를 내고 있다. 10월 23일 울산지법은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자 122명에게 70억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고, 이어서 부산고법에서 2건(90억, 10억)의 판결과 20억 손배소 심리가 열린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2012~2013년 손해배상청구소송도 10건 이상 준비 중이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이미 1억원이 넘는 소송인지대를 납부했으며 소송이 거듭될수록 그 금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2건의 선고가 1심 판결을 유지하면, 상고심 인지대만 1억원 이상을 납부해야 한다. 어쩌면 소송비용이 없어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사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이라는 폭탄을 퍼부어 노동조합을 초토화하고 노동자들을 무릎 꿇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의 협조로 형이 확정되면, 가압류의 집행으로 아예 노동자들을 말려 죽이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2003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이 손배가압류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겠는가? 현대자동차 사측은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집요하게 해당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다니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손배가압류를 미끼로 노동조합 탈퇴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취하를 종용하고 있다. 이건 분명한 부당노동행위이며 과도하게 소송을 제기하는 소권남용의 불법을 공공연하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시도 아닌 시로 스스로를 정리해 보았다.

올해 난 호적상 만 65세가 되면서 / 법적으로 노인이 되었다 / 노인답게 좀 점잖게 / 쓸데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 아무 데나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 좋다고 생각했다 / 젊은 세대를 믿어야 하고 /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 마땅하고 옳다고 여겼다 / 촛불이 타오르고 깃발이 나부끼는 / 시청광장이나 청계천 거리도 / 이젠 그들 몫이며 책임이라 생각하고 / 나가지 않기로 굳게 다짐도 했다 / 그래야 구태의연하지 않은 / 당당하고 새로운 흐름이 생기리라 믿었다

그러다가 3월을 못 넘기고 /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 가난의 절벽 앞에서 희망마저 포기하고 / 연탄불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괜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4월 16일 / 구조할 수 있는 생때같은 목숨 304명과 함께 /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 서서히 가라앉아 가던 세월호 / 그것은 나라 없음을 확인하는 / 불쌍한 유민들의 피눈물이었다 / 결국 광화문으로 시청광장으로 종로로 / 넘치는 대열의 끝자락에서 / 유령처럼 함께 따라 흐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가을이 오고 / 대법원은 서둘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 수백 명의 목숨을 / 고등법원에서 그렇게 애써서 / 구조해놓은 생명을 / 파쇄기에 넣어 종이 자르듯 / 그렇게 파기 환송했다 / 때맞추어 서울 강남구 신현대아파트에서는 / 아파트 주인들의 쓰레기 취급을 /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 스스로 불 타 쓰레기가 된 / 어느 쓰레기 치우는 노동자의 장례식이 / 쓰레기 치우듯 치러지고 있었다 / 44년 전 전태일이 그렇게 불타 죽은 그날 / 이 소식을 전태일 묘지에서 들으며 / 꽉 쥔 두 손을 바르르 떨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오늘 / 서울검찰청 앞길에 서 있다 / 그렇게 경비원을 쓰레기 취급하는 / 강남의 부자 아파트 단지에서 /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줘야 하는 / 그 잘난 시급 5210원 최저임금도 주기 싫어서 / 경비원 전체를 집단해고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 최저임금이나 겨우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 파업 때문에 생긴 손실이라며 / 천문학 숫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 그걸 미끼로 노조탈퇴 종용 등 / 온갖 공갈과 협박으로 /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는 거대한 현대자동차에 맞서 / 수레 앞을 가로막고 선 사마귀처럼 / 허공에라도 회회 손을 저으며 / 악을 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 함께 어깨 걸고 서 있다 / 그렇게라도 곁에 서 있어 달라는 / 그 몸부림만은 차마 거절하지 못해 / 손잡고 서 있다 <다시 거리에 서다>

<이수호 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412231523471&pt=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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