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05 시사위크] 손잡고 연극제 ‘노란봉투’가 전하는 따뜻한 시간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유난히도 추운 12월 초순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자는 지난 4일 서울 대학로로 향했다. 한파도 녹일 듯한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 찬 번화가에서는 다소 떨어진 곳이었다. 어둑하고 인적이 많지 않은 작은 뒷골목. 그곳에 ‘연극실험실-혜화동 1번지’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연극 ‘노란봉투’가 상연되고 있다. ‘손잡고 연극제’의 첫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쯤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겠다. 우선 ‘손잡고’는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약자다. 최근 노동자 탄압에 자주 동원되는 각종 손배·가압류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노동·시민·사회분야 인사는 물론 종교계와 학계, 법조계, 정치권, 언론인, 문화예술계, 의료계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있다.

연극의 제목인 ‘노란봉투’는 지난해 12월 시작된 ‘기적’에서 따왔다. 파업에 참가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사측의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로 고통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시사인> 독자가 “4만7,000원씩 10만명의 힘을 모아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평범한 주부의 제안은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고,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이후 이효리 같은 ‘셀러브리티’와 해외 유명학자 노엄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도 동참하는 등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는 소박했다. 객석은 50석 정도였고, 무대와의 거리는 한 걸음이었다. 배우와 관객이 소통하고 공감하기엔 그 어떤 무대보다 훌륭했다.

 

 공연이 예정된 8시가 가까워오자 지하에 자리 잡은 소극장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노동’을 주제로 한 연극이기에 많은 사람이 찾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과 찾더라도 나이 많은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날 ‘혜화동 1번지’는 자리가 모자라 일부 관객이 바닥에 앉아야할 만큼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또한 20~30대 젊은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잠시 자리 정리가 이뤄진 후 본격적으로 ‘노란봉투’ 연극 공연이 시작됐다.

 

연극은 노조 사무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업을 막 마친 노조 조합원들이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눈물을 흘린다. 딱 우리네 삶과 같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과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한때 함께 투쟁하다 ‘어용’으로 돌아선 동료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는 조합원들은 일자리도 잃고 ‘손배폭탄’까지 맞는다. 꿈에서조차 자살을 생각할 만큼 잔인한 현실이다. 결국 현실에서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한 이들이 절박한 마음을 안고 고공농성에 돌입하면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이처럼 ‘노란봉투’에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향한 ‘손배·가압류’ 압박과 세월호 참사의 비극, 그리고 한 겨울 노숙농성도 모자라 고공농성까지 벌이고 있는 씨앤앰 비정규직 노조의 절규가 모두 녹아있다. 2014년 12월, 우리가 숨 쉬고 있는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작은 무대로 고스란히 옮겨 온 것이다.

 

노동을 주제로 한 영화라고해서 심각하고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노란봉투’안에는 적절한 유머와 진지한 고민이, 그리고 냉엄한 현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특히 ‘노동문제’에 대한 친절하고 쉬운 설명도 곁들이고 있어,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들도 편하게 다가설 수 있다.

 

여기에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연과 빼어난 몰입도는 90분이라는 시간을 금세 지나가게 만든다.

 

매회 다른 특별게스트들의 출연도 주목할 만하다. 연극의 마지막부분에 특별게스트가 등장해 고공농성에 돌입하는 노동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과거 투쟁 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해오고 있는 노동자들과 각계 인사들이 특별게스트로 나서고 있다.

 

이날은 청계 피복공장 여공 신순애 씨가 특별게스트로 함께했다. 마이크를 잡은 신순애 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너무 힘들어 보인다.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는 말만 전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 모습을 본 몇몇 관객도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노란봉투’는 출연 배우들의 한바탕 춤사위로 막을 내린다. 짧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소통한 배우들의 춤사위는 만감을 교차하게 했다. 오랜 투쟁과 절박한 삶의 한이 담긴 춤사위일까. 아니면 먼 훗날 ‘승리의 그날’ 기쁨이 담긴 춤사위일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연극 ‘노란봉투’는 오는 14일까지 계속된다. 이후에도 ‘손잡고 연극제’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노동자들의 현실도 계속되듯이 말이다.

 

혜화동 1번지 앞에선 티켓 대신 노란봉투를 관객들에게 건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심코 가방에 넣어두었던 노란봉투를 꺼냈다. 그 안엔 관객들에게 전하는 한 장의 편지가 담겨있었다. “이 연극이 그저 연극 한 편이 아닐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께서 손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연극 ‘노란봉투’(작가 이양구, 연출 전인철, 제작 극단 해인)는 오는 14일까지(월요일 휴무) 서울 대학로 ‘혜화동 1번지’에서 계속된다. 평일은 저녁 8시, 토요일은 오후 4시·7시, 일요일은 오후 4시에 공연하며, 일요일엔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된다. 문의:02-9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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