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5 시사인] 노조 파괴 ‘매뉴얼’대로? 노동권 존중 ‘헌법’대로!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노조 파괴 ‘매뉴얼’대로? 노동권 존중 ‘헌법’대로!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원문보기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929

 

 

ⓒ윤현지 그림

“우리 문제는 죽어야만 이슈가 되는 겁니까.” ‘손잡고’라는 단체의 활동가로서 처음 한 일은, 파업한 노동자가 거액의 손해배상·가압류에 직면하는 현실을 해결하자며 2014년 시작된 시민모금 ‘노란봉투 캠페인’ 기금을 배분하는 일이었다. 그때 손배 가압류 당사자들을 처음 만났고, 이 문제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끝까지 기금 수령을 거부했던 한 노동자의 절규가 지금도 생생히 가슴에 남았다. 이 노동자는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어 처음으로 노동권을 행사했는데, 권리행사로 한 첫 요구가 ‘안전’과 ‘근로기준법 준수’였다. 손배 가압류 사업장 가운데 비교적 최근 노조를 만들고 손배 소장을 받은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도 노조를 설립하고 내건 첫 요구는 같았다. ‘안전’ ‘근로기준법 준수’. 우리는 여전히 전태일 시대에 살고 있다.

‘죽어도 이슈가 되지 않는다.’ 당시에는 절규 앞에 어쩔 줄을 몰랐지만, 이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서로 공감했던 현실이다. 노동자의 죽음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다. 쇳물에 노동자가 녹아내려도 안전장치 설치비보다 보상금으로 나가는 ‘목숨값’이 더 싼 시대다.

각자의 현실은 늘 절절하다. 그리고 사업장마다 노동권을 행사하게 되기까지 그 배경과 사연은 매우 복잡하다. 반면 기업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간단하다. 매뉴얼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 당하는 개개인은 일상이 무너지지만, 무너진 일상을 세상에 공개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노동의 문제는 지면에 담기도, 1시간짜리 시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어렵다. 기업은 어떨까. 그저 한마디면 된다. ‘기업경제가 무너진다.’ 이 마법 같은 한마디는 다른 과정을 전부 집어삼킨다. 파업으로 기업이 망했다는 실제 사례는 단 한 건도 본 적이 없다.

애초 손배 가압류의 원인이 된 노동권 행사의 이면에는 ‘최소한의 요구’가 있다. 기업이 안전하게 노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갖추고, 헌법상 권리인 노동권을 존중하면 적어도 손배 소송의 원인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이후 발생할 노사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하위법과 정부기관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위법’을 헌법상 기본권을 존중하지 않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노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손배 가압류 문제 대처 위한 ‘노란봉투법’

노동자의 죽음이 손배 가압류를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손배 가압류 제도를 사수하려는 경총의 공식 입장은 이러했다. “불법 쟁의행위에만 손배 가압류 청구한다”(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연이은 죽음으로 촉발된 손배 가압류 제도개선 논의 당시 경총의 입장), “손배 가압류는 불법 쟁의행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 (이승길, 〈불법 쟁의행위와 손해배상·가압류에 관한 연구〉, 한국경영자총협회 부설 노동경제연구원, 2004). 그러나 ‘불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용자 측의 주장만으로 청구 가능한 게 손배 소송이며, 쟁의행위를 막기 위해 기업은 손배 가압류 외에도 회사 차원의 징계, 형사고발을 병행한다.

손배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도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한 하위 법령일 뿐이다. ‘노란봉투법’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논의된 바 없다. 쟁의행위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노동권의 기본인 ‘단결’도 그냥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노동자를 절박하게 단결하게 하는 그 배경에는 부당노동행위, 불법파견, 근로기준법 위반, 안전 소홀 등 기업의 불법 또는 위법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의 불법이나 위법이 드러나도, 심지어 법적으로 경영자가 처벌을 받아도, 한번 제기된 손배소는 철회되지 않는다. 한번 무너진 노동자의 일상 또한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손배를 청구하지 않도록 하는 일은 헌법상 노동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