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30 레디앙] 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법 개정 추진···노동계 "개악·저지"

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법 개정 추진···노동계 "개악·저지"

31일 입법예고 9월 정기국회에 제출...격돌 불가피

유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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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31일 입법예고한다. ILO 핵심협약의 내용과 상충된다며 노동계가 반대했던 사업장 점거 금지와 단협 유효기간 연장 등도 법 개정 내용에 포함됐다. 노동계는 “기존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키는 명백한 노동개악”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사의 자유 협약과 관련한 입법에 대해서는 각계 의견수렴을 거쳐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정부입법안을 마련해 31일부터 입법예고하고 9월 정기국회 내에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 등을 비준하기 위해 개정에 나선 법안은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 3개다.

실업자·해고자 노조 가입 인정,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 삭제와 제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사업장 내 생산 시설과 주 업무 시설 점거 금지(사업장 점거금지), 단체협약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을 골자로 한다.

특수고용‧간접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이나 노조설립신고제도, 공익사업장 쟁의권 등 노동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단결권 강화를 위한 내용은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주요 쟁점이었던 실업자·해고자 노조가입 인정에 관해 정부 개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활동이 기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도록 하는 단서를 뒀다. 문제는 이러한 단서가 ILO 원칙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ILO는 실업자·해고자도 차별 없이 조합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기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와 같은 추상적 표현은 향후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대포적 독소조항 ‘사업장 점거 금지’
···ILO는 직장 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

사업장 점거 금지와 단협 연장은 재계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대가로 요구해온 ‘사용자 공격권’의 일부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한 최악의 노동개악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된 평가다.

특히 ILO는 직장 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더욱이 현행법 상에도 파업에 따른 직장폐쇄 등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방법이 있는 상황에서 직장점거를 법으로 금지하게 되면 일상적인 노조활동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전전이나 피케팅마저도 불법화해 이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 징계, 손배·가압류 등 처벌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단협 연장도 ILO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비판이다. ILO는 ‘일터에서 변화하는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에 대한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반영의 필요성’을 고려해 단협의 유효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져선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노동부는 이러한 내용의 개정안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노개위)가 지난 4월 발표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개위는 지난해 말 해고자의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공익위원안을 발표했다가 올해 4월 들어 ‘사용자 공격권’ 등 재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최종안을 내놨다. 당시 노개위는 최종안을 발표하며 “균형 잡힌 대안”이라는 취지의 평을 내놨으나, 이와 관련해 노사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현재 ‘경사노위 합의안’은 없는 상태다.

박화진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정 합의가 최선이었겠지만, 더 이상의 합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사노위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입법안을 마련했다”며 “공익위원안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 노동기본권 보호라는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면서도 현장의 우려 등 우리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한 보완입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진=노동과세계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들 정부안 맹비판
“노동개악, 본말전도, 노동자에 대한 선전포고···강력 저항할 것 “

노조법 개악 없는 ILO 핵심협약의 온전한 비준을 요구해온 노동계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 안”이라고 날을 세우며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ILO 핵심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며 정부 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ILO핵심협약 비준으로 빌미로 재계의 요구였던 사업장 점거 금지, 단협 유효기간 연장을 개정안 포함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다.

민주노총‧ILO긴급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긴급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제도개선은 팽개치고 난데없이 노조법 개악안을 들고 나왔다”며 “이는 국제기준에 맞는 결사의 자유를 바라는 2천5백만 노동자와, 백만 민주노총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등은 “한국 노동권을 최소한의 국제노동기준에 턱걸이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헌법으로 이미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축소했다”며 “특수고용 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내용을 모두 누락시켰고, 실업자‧해고자의 결사의 자유, 노조 임원자격, 전임자 급여,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 등은 국제노동기준에 훨씬 못 미칠뿐더러 취지에도 반한다”고 비판했다.

실업자·해고자 노조가입 허용 등에 관해 “이들의 조합 가입을 이유로 ‘노조 아님 통보’를 안 하겠다는 것일 뿐, 오히려 조합 활동에 추가제약을 가했다”며 “이걸 최소한의 결사의 자유 보장과 ‘균형 잡힌 대안’이랍시고 내미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입법안은 ILO핵심협약에 한참 미달하는 매우 실망스런 내용이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ILO핵심협약은 최소한 노동인권에 관한 기본협약으로써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주체로서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라며 “그럼에도 지금까지 경사노위에 책임을 미루고 수수방관하다가 고작 마련한 것이 공익위원안이란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는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한 노동법 개악 추진을 중단하라”며 “이대로 노동법개악을 밀어붙인다면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