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끼 입고 로비에 있었다고 21억 소송?
[작은책] ‘노란봉투법’으로 손배소 없는 세상을 꿈꾼다
 
윤지선 활동가 
 
“난 괜찮아요. 이미 내 앞으로 된 재산이 없어요. 다른 조합원들이 걱정이지요.”

“손배소 얘기가 들려요. 체불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통장을 만들면 위험할까요?”

갑자기 무슨 재산 이야기일까. 각각 하이디스와 동양시멘트 조합원의 면담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해 쟁의행위를 하다 손배가압류에 처한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이야기다.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는 노동3권에 따라 노동조합 활동을 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마저도 과거에는 조합 간부와 같이 노동조합 안에서도 앞장선 인물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제는 간부와 평조합원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손해배상청구 대상이 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면 말이다. 나아가 사용자 측은 연대한 활동가와 시민 등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아닌 사람들을 상대로도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다. 상황이 이러니 본격적으로 쟁의를 시작하기 전 조합원들은 스스로와 가족의 생존을 위해 각자 재산 정리부터 고민한다.  

지난해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만 따져도 23개 사업장에 약 1600억 원의 손배청구금액과 175억 원의 가압류가 걸려 있다. 노동조합과 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쟁의로 인한 손실을 메워 보겠다는 시도다. 그러나 노동자가 평생을 일해도 벌기 어려운 금액을 손해배상을 위해 청구하겠다는 것부터 사실상 불가능한 시도이다. 심지어 해고노동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을 사 측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는 결국 노동3권, 노동조합을 깨기 위한 수단”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월 손배소 재판 세 건을 통해 손배소의 민낯을 들여다보자.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4년 9월 법원에서 현대차의 정규직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연합뉴스


손배가압류, 원고는 페이퍼컴퍼니 

첫 손배소 재판은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동양시멘트지부의 50억 원 손배소 건이다. 2014년 5월 강원도 삼척 동양시멘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동양시멘트가 고용관계를 책임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 10개월만인 2015년 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위장도급 판정으로 ‘동양시멘트의 정규직’임을 확인받았다. 그러나 같은 날 동양시멘트는 정규직 이행은커녕 ‘도급계약해지’를 통보한다. 그리고 닷새 뒤 조합원 24명을 포함해 노동자 101명이 해고된다.  

조합원들은 곧장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들어갔다. 동양시멘트가 대화를 거부하니 출근투쟁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합원들은 무방비상태에서 손배가압류라는 날벼락을 맞는다. 출근투쟁 기간에 점거농성을 한 조합원 24명에 대해 16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와 5억9000만 원의 가압류가 들어온 것이다. 어떤 조합원은 병원에 갔다가 통장 가압류로 출금을 못 해 병원비를 내지 못하고, 어떤 조합원은 살고 있던 전셋집의 전세 보증금이 가압류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장을 살펴보던 조합원들은 깜짝 놀랐다. 원고가 ‘다물제이호’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표면상 동양시멘트의 자회사이지만,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사용주로서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페이퍼컴퍼니로 규정된 곳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 페이퍼 컴퍼니가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다물제이호가 ‘수출 손실’ 등을 빌미로 청구금액을 16억 원에서 50억 원대로 올려 신청한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도 접수되었다. 노동조합 결성 1년 만에 조합원 24명이 페이퍼컴퍼니가 청구한 50억 원대의 손배소와 5억9000만 원 가압류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20일 동양시멘트 조합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24명의 조합원들이 ‘동양시멘트 정규직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손배가압류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변론을 담당한 윤지영 변호사는 “노동자 손배소 재판의 특성이 파업의 원인을 누가 제공했느냐보다는 파업 당시의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탓”이라고 사법부의 한계를 설명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도 조합원들은 50억 원의 손배와 가압류에 뒤흔들리는 일상을 견디고 있다. 반면, 우연인지 50억 원만큼의 체불임금 지급 명령을 받은 동양시멘트는 이행강제금만을 부과하며 버티기 중이다.  

 

손배가압류, 벗어나고 싶다면 권리를 포기하라 

‘불법파견’과 ‘비정규직에 대한 손배소’하면 곧장 떠오르는 노동현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 청구된 총 300억 원이 넘는 손배소 가운데 ‘2010년 파업’에 대한 90억 원 손배소 건의 2심 선고가 지난달 25일에 진행됐다. 

해당 파업 역시 원인 제공은 사 측이 했다. 2010년 사내 하청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 측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정규직 이행조차 지키지 않았다. 대화를 위해 조합원들은 쟁의를 해야 했다. 그러나 쟁의의 대가는 가혹했다. 사 측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 막대한 손배소 청구는 물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업무방해 방조죄’를 물어 손배소를 청구했고, 희망버스 등 연대한 활동가와 시민에게도 손배소를 청구했다.  

더욱 가혹한 것은 사 측이 손배소 청구 이후, 손배 청구 대상자들을 상대로 이미 청구된 손배소를 이용해 2차 노동탄압을 가했다는 점이다. 사 측은 ‘손배소 취하’를 조건으로 노골적으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포기’를 종용하고, 일부 조합원에게는 노동조합 활동 중단까지 강요한다. 권리를 포기하면 손배소의 고통에서 제외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일부 조합 간부와 파업에 참여한 정규직 조합원은 제외를 했다. 청구 금액이 얼마든 ‘연대책임’을 묻는 손배소는 한 명 한 명에게 90억 원이면 90억 원, 해당 청구금액만큼의 무게를 지운다. 따라서 청구대상이 줄더라도 금액은 그대로 유지된다. 결국 사 측이 요구에 응하지 않고 버티는 조합원들은 홀로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손배가압류, 경영진 명예의 가치
 

모욕 1억 원, 명예훼손 4억 원, 업무방해 21억 원 등 쟁의로 인한 손해를 특정할 수 없는 영역에서마저 수십억 손배소를 청구받은 노동자들도 있다. 바로 금속노조 경기도지부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이다.  

2008년 하이디스를 인수한 대만의 ‘이잉크’는 회사와 공장을 키울 것을 노동자에게 약속했지만, 약속과는 달리 2013년부터 서서히 구조조정을 단행하더니, 급기야 2015년 공장마저 폐쇄하고 공장 필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시설관리부를 제외한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한다. ‘특허 장사에 노동자와 공장은 필요 없다.’ 사 측의 일방적인 행보에 노동자들은 뭐라도 해야 했다. 대화를 위해 노숙농성은 물론, 힘겹게 대만 원정 투쟁까지 나서지만, 이것이 수십억 손배소의 빌미가 되었다.  

조끼를 입고 회사 로비에 서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업무방해 21억 원, 대만 원정에서 강제송환이 결정된 조합원이 설움에 신발을 던졌는데 그 행위가 모욕적이라며 1억 원, 심지어 동료의 죽음 앞에 오열한 지회장의 발언이 기사화된 것을 빌미로 ‘출판인쇄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4억 원을 청구한다. 뿐만 아니라, 세 건의 손배소 당사자들은 통장, 부동산, 심지어 부인 명의로 된 전세 보증금까지 가압류 신청되었다. 사 측은 총 30억 원을 가압류 신청했다. 

이 세 건의 재판 가운데 모욕에 대한 1심 선고가 지난달 24일에 있었다. 손배소 세 건과 같은 혐의로 사 측이 형사고발해 이미 지회장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손배소 사건을 기각시켜 달라는 시민 탄원서를 보내 열흘 만에 1만 2000건이 모였다. 법률 대리인이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노동자를 타깃으로 삼지 못하게 하자, 이쯤 되면 자연스레 의문이 든다. 노동3권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를 할까? 그 근거가 되는 법 조항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다. 해당 조항의 ‘쟁의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좁디좁은 해석이 사용자에게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노동자와 그 가족, 그리고 신원 보증인에게까지 넓게 허락하고 있다. 또한 손해를 산정하는 법적 기준조차 없으니, 천문학적인 금액을 청구하도록 허락한 셈이다. 그 결과 민사상 손해배상이 헌법의 노동3권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해결책은 없을까?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가 전문가, 학계, 당사자 집단의 의견을 거쳐 제안한 해결 방안은 위 노조법 제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다. 손배소 관련 판례들을 살펴보면 사법부의 저울은 이미 헌법적 가치보다는 사용자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사법부에 기댈 수 없다면 국회에 법 개정을 통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 이 순간도 노동3권에 따라 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타깃이 되어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숨통을 트여 주는 일은, 더 이상 노동자를 타깃으로 삼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 노란봉투법 입법청원 www.sonjabg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