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친 노동법 판례⑥] 손해배상, 가압류

 

헌법 제33조 제1항 :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 :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위에서 보듯,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조법)은 파업·태업 등 단체행동권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에 대해 회사는 노동조합 뿐만아니라 수십 명의 노동자들에게 약 1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현대자동차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총 21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해 10월 23일 울산지방법원은 노조원 122명에게 70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노동자의 자살로 이어졌다. 같은 해 11월 6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힘들다, 현대에 꼭 이겨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한 것.


법은 노동자 파업에 ‘민사면책’을 규정하고 있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회사 측의 손해배상, 가압류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투쟁도 그랬다. 회사는 노동조합이 조합비를 400년 동안 모아도 갚을 수 없는 158억 원이라는 돈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하였다. 이에 한진중공업지회 간부였던 최강서씨가 2012년 12월 21일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사는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법원은 지난해 1월, 한진중공업지회에 59억 원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노동자가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폭탄을 감수해야 한다. 아무리 합법적인 파업을 하려고 해도 언제 내 집과 통장이 날아갈지 모른다. 파업을 하려고 하는 노동자들은 언제부터인가 구속을 각오하는 것을 넘어 수 억, 수십 억의 빚을 떠안을 각오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헌법과 노조법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보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나. 노동자 파업에 대한 사용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와 법원의 판결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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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해배상청구 158억 철회’ 등을 요구하며 2012년 12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의 빈소가 있는 부산 영도 구민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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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동기본권과 현저히 다른 영국와 프랑스

노동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해외의 사례는 우리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영국은 1906년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의 규율을 위한 법률(An Act to provide for the Regulation of Trade Unions and Trade Disputes)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불법행위 소송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하던 기존 법원 판결은 입법을 통해 금지되었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영국에서는 이미 100여년 전에 법률로 금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노동기본권의 현주소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1980년대 이후 영국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책임 면책 범위가 상당 부분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현재도 손해배상 책임재산을 일정하게 제한하거나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제한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적절히 제한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손해배상액의 상한이란, 사용자가 쟁의행위를 이유로 노동조합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일정금액 이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존립과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설령 사용자가 그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는 법정 상한을 넘어설 수 없다.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에 따라 손해배상청구 상한액을 법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조합원수 5000명 미만의 경우 약 1740만 원, 5000명 이상 2만5000명 미만의 경우 약 8700만 원, 2만5000명 이상 10만 명 미만의 경우 약 2억1730만 원, 10만 명 이상의 약 4억3050만 원으로 상한을 설정하고 있다. 불과 조합원 수 몇 백명 규모의 단위 사업장에서 수백억 원을 청구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프랑스는 파업이 헌법에 명시된 합법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업무방해죄와 같이 파업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파업은 합법행위이므로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이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단, 예외적으로 노동자가 파업권을 남용한(고의적인 기업조직의 파괴행위로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 경우와 순수한 의미의 정치 파업에 한해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손해배상이 인정된다. 정부의 경제정책 또는 사회정책에 저항하기 위한 경제적 정치파업(임금동결 거부, 근로시간 단축 등)은 직업적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것으로서 합법적인 파업에 해당한다. 


노동자 파업의 주된 이유인 근로조건 유지·개선뿐만 아니라 고용보장 등 노동자들의 집단적 직업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이라도 쟁의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사용자로부터 특정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도, 직업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자의 결정 내지 조치에 대한 반대하고 항의 또는 불만을 표출하는 파업도 허용된다.


우리 법원이 문제삼는 집단적 파업의 시기, 자발성 유무, 범위, 기간, 장소 등은 중요하지 않다. 조정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고 공공서비스 분야를 제외하고 사전통지를 할 필요도 없다. 우리 노조법은 노사 당사자가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 여지가 없을 때’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쟁의행위를 함에 있어 교섭 결렬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최후수단의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권리행사자로서 노동자는 쟁의행위 실시 여부나 그 시기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영국, 프랑스에서 파업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까다로운 조건 하에 제한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파업은 ‘원래’ 불법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남발되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법원이 쟁의행위 중 ‘정당한’ 것만이 민사면책의 대상이 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함으로써 노동자들이 합법 파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회사 측의 막대한 손해배상, 법원의 법리 해석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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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부당함을 알리는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지난해 2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약칭 ‘손잡고’) 출범식에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이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부당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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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 제3조에서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쟁의행위’로 인정되는 행위에 대한 민사면책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법원은 정당한 쟁의행위와 그렇지 않은 쟁의행위로 구분하여 민사면책의 대상을 ‘정당한 쟁의행위’에 국한시키고 있다. 쟁의행위의 정당성 유무가 면책의 요건이 되고, 정당성이 없으면 곧바로 불법행위가 된다는 말이다. 아래 1994년 동산의료원 사건 대법원 판결 내용을 보자. 


“민사상 그 배상책임이 면제되는 손해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국한된다고 풀이하여야 할 것이고,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는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은 사용자는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법원에 의한 파업권의 훼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법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뭘까?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임이 헌법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는데도,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로 취급하고 있는 데 있다. 쟁의행위가 정당한 경우 예외적으로 면책된다는 식으로 소극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쟁의행위나 그 밖의 조합활동은 헌법에 규정된 ‘단체행동권’으로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노동력 제공을 집단적으로 거절하는 파업은 쟁의행위의 가장 일반적인 표현 형식이다. 따라서 집단적인 노무제공의 거절 그 자체를 위법한 행위로 파악하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력 처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새로운 형태의 노동탄압으로 대두된 이후 손해배상의 규모와 그로 인한 폐해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조합비 뿐만아니라,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과 개인 재산, 심지어 신원보증인의 재산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동원되고 있다. 헌법이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노조법에서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면책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단지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파업)’를 이유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수십 억, 수백 억의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행법과 판례의 해석으로 민사면책의 대상이 되는 쟁의행위를 극도로 제한적으로 한정하고, 대부분의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낙인찍고 있기 때문이다. 합법 파업을 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협소하고, 정상적인 파업권 행사마저 행정기관과 법원의 유권해석을 통해 대부분 불법파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단순한 노무제공 거부(노동을 하지 않는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다)도 불법파업으로 규정되면 ①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 ② 해고 등 징계 ③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등이 한꺼번에 뒤따르게 된다.


사용자는 선택적으로 또는 병행하여 형사처벌, 징계, 손해배상의 각종 법적인 탄압수단을 동원해 헌법상 보장된 노동조합의 쟁의권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막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소 제기 자체만으로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킨다. 그리고 결국은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업무방해로만 볼 수 없는 파업, 10년 넘게 미뤄온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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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금속노동조합 두산중공업지회와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가 9일 중식시간에 창원 두산중공업 정문 앞에서 연 “노동열사 배달호 12주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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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사용자 관계는 일회적이지 않다. 쟁의행위가 끝난 이후에도 노동력의 제공과 임금지급의 관계가 지속된다. 노동자 파업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는 사용자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회사가 엄청난 이익을 얻어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쟁의행위 기간에 일시적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지연된 생산물량을 보전하는 것도 역시 노동자들이다. 그러할진대 특수한 노사관계의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쟁의행위를 이유로 노동자가 평생을 벌어도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의 굴레를 지우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내몰고, 손해배상·가압류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노사갈등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 손해배상·가압류가 가지고 오는 인간성 파괴와 노동조합의 말살, 노동자들의 죽음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쟁의행위 정당성에 대한 판례 법리 변경과 더불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을 개정해 노동자 파업에 대한 민사면책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먼저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행 노조법 제2조 5호는 노동쟁의에 대하여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리해고가 쟁의행위의 목적사항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더 나아가 권리분쟁사항,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한 사항도 쟁의행위 대상임을 명시해야 한다.


현재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은 노동조합과 개인을 가리지 않는다. 손해배상의 범위도 쟁의행위로 인해 사용자가 입은 영업손해 전부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파업은 헌법상 쟁의권으로서 기본권 행사이다. 예외적으로 책임을 묻는다 하더라도 그 책임범위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손해배상 책임의 주체, 대상, 범위의 측면에서 제한규정을 입법화해야 한다.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쟁의행위가 헌법 및 노동관계법상의 목적을 현저히 벗어나거나 폭력, 파괴행위를 주되게 동반한 경우에 한하여 민사면책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 민사면책의 제외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도 그것이 노동조합에 의해 주도된 것이라면 노동조합 임원이나 조합원 그 밖에 노동자와 그 신원보증인에 대해 손해의 배상이나 가압류를 청구할 수 없도록 제한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부담하는 손해배상의 범위 역시, 손해배상 원인이 된 대상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된 손해에 한정해 사용자의 영업 손해가 무한정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의 후진성에 대해 국제적인 지적에 이어 대법원 판례변경까지 이루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1. 3. 17. 선고 2007도482)은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파업은 업무방해에 해당하고 정당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 한 불법이라는 기존의 입장에서, 파업은 원칙적으로 합법적인 행위이며 예외적으로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되는 경우에 비로소 업무방해라는 불법행위가 된다고 하였다. 파업을 무조건 업무방해로 보아 불법시하는 것은 잘못임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명백히 확인된 것이다. 


업무방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변경된 이상 더 이상 ‘노동자 파업 = 업무방해 = 불법행위 = 손해배상’이라는 등식이 인정될 수 없다.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원의 적극적인 법해석, 나아가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노동관계법의 개정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분신, 10개월 뒤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의 자결 이후 10년 넘게 미뤄온 과제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69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