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7 민중의 소리] [기자수첩]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100억 손배 소송은 멈추지 않는 폭력이다

[기자수첩]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100억 손배 소송은 멈추지 않는 폭력이다

양아리 기자 yar@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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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임화영 기자

크리스마스날인 25일,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반갑게 인사하는 그에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관해 물었다. 전날 기한 없는 휴직 연장을 사측으로부터 통보받았던 마지막 복직 예정자에게 손해배상 문제는 무척이나 가슴 아픈 질문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 지부장은 "손해배상 금액만 100억 원"이라며 "복직한 노동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손해배상 소송을 생각하면, 2009년 파업 당시의 국가폭력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와 사측의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자들을 국가폭력의 그날에 가두었다. 그래서 10년 넘게 국가폭력은 진행 중이다.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국가폭력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손배대응모임과 쌍용자동차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국가폭력 피해 10년, 쌍용차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2.19.

국가손배대응모임과 쌍용자동차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국가폭력 피해 10년, 쌍용차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2.19.ⓒ뉴시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국가와 회사가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앞서 경찰은 파업 중인 노동자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각종 장비가 파손됐다며 16억여 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1월 1심 재판부는 쌍용차지부 조합원 등 100여명이 경찰에 약 14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6년 5월 2심 재판부도 경찰의 손을 들어 줬다. 2심 재판부가 인정한 손해배상액은 약 11억 원이다. 1심 판결 후 배상금에 대한 이자가 붙어 갚아야 할 돈은 20억원이 넘는다.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다. 2013년 1심 재판부는 금속노조가 회사에 33억114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배상금은 6년 동안 지연이자가 붙어 현재 80억원까지 늘어났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할 손해배상 금액이 무려 100억 원에 육박하는 상황인 셈이다.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열린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쌍용차 사건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른 쌍용차지부-범국민대책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규명과 책임자 엄벌을 위해 쌍용차 노조 강제진압 책임자 처벌,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사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구성 등을 촉구하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열린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쌍용차 사건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른 쌍용차지부-범국민대책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규명과 책임자 엄벌을 위해 쌍용차 노조 강제진압 책임자 처벌,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사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구성 등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의 조사 결과,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했을 당시 과도한 경찰력 투입과 강제 진압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민갑룡 경찰청장은 강제진압을 비롯한 국가폭력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부로부터 국가폭력 피해를 인정받기까지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당시 조사위는 손배소송 철회 등을 경찰에 권고했지만, 경찰은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손배소송을 철회하지 않았다. 국가폭력 피해자인 쌍용차 노동자들이 경찰의 강제진압에 저항한 일에 대해 법적 판결을 받아야만 되는 상황이다.  

2009년 사태 이후, 노동자들은 동료와 가족 등 30명을 하늘로 떠나보냈다. 30번째로 사망한 해고 노동자는 '조립공장 옥상 경찰특공대의 토끼몰이 폭력 진압 피해자'이자, '국가 손해배상의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징역형까지 살았기에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출소 뒤엔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국가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기는 커녕 죽음의 절벽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누구인가?  

3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故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에서 시민이 참배를 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인 故 김주중 씨는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달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3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故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에서 시민이 참배를 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인 故 김주중 씨는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달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김슬찬 인턴기자

현장에서 만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눈물과 외침을 기억한다. '해고는 살인'과 같았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미끄럼틀 한국 사회'에서 해고는 노동자의 삶을 밑바닥으로 추락시켰다. 해고 이후,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생명보험, 예금, 적금 등 사적 안전망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와 일부 언론이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을 폭도로 몰았다. 이들은 '파업한 노동자'라는 이유로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해고 노동자들은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용직을 전전해야 했다. 또 국가폭력의 기억으로 고통받았고,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와 기업은 '법대로 하겠다'고 한다. 애초에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피해까지 노동자의 잘못으로 몰고 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있다.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인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껍데기만 소송일 뿐이다. 실제로는 국민과 노동자를 괴롭히는 '보복조치'나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평생을 일해도 갚지 못할 엄청난 금액을 소송으로 청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해배상 소송은 흔히 '괴롭힘 소송'으로 부른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게 되면 회사측은 노조를 탄압하거나 파괴할 목적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소송을 걸어 노동자들을 괴롭힌다.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폭력의 사슬이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기업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20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해고에 저항한 노동자를 상대로 한'괴롭힘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대로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하며 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현장에서 "1억원의 손해 배상 통지서가 집으로 날라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노동자를 기억한다. 최저임금 남짓한 돈을 버는 노동자가 1억을 갚아나가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이는 끔찍한 상상이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닥친 폭력과도 같은 현실이다.